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천문학은 선사시대부터 밤이 되면 유일하게 보이는 하늘의 무수한 별과 달을 보고 당시의 인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어 발생한 학문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 보면 가장 일찍이 생겨난 학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학문이 생겨난 시기는 동양과 서양 두 지역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동양과 서양 모두 농경사회를 거치면서 날씨에 민감하게 신경 쓰기 시작했고, 이러한 날씨를 예견하기 위해, 또 바다를 항해할 때 방향을 알기 위해 자연스레 천문학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스톤헨지(서양)나 대한민국 경주의 첨성대(동양)와 같이 이러한 천문학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대 유적도 발견된 것이 동양과 서양 모두 천문학에 큰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 고대의 천문학
고대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이 중심점인 지구를 태양과 달이 공전한다고 믿었다.(지구중심설, 천동설, 프톨레마이오스 모형)
천문학은 역사적으로 하늘에 대한 제사를 위한 종교적인 목적이나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생겨난 부분도 있다. 한 예로 중국이나 이집트, 그리스, 인도, 마야 등의 고대 문명에서 발견된 천문대는 하늘에 예를 표하며 제사를 지내고 또 하늘을 관측하여 농사에 도움이 되고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이전 고대의 천문학은 맨눈(Naked Eyes)으로 관측될 수밖에 없었으며 맨눈으로 우주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이런 시작이 측성학(하늘의 별과 행성들의 위치를 측정함)으로 발전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행성의 운동과 태양, 달의 연관관계 및 지구의 본질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다.
이후 고대 바빌론에서 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천문학도 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바빌론의 천문학자들은 월식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한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러한 발견은 이후 다른 문명에도 영향을 주어 천문학의 역사적인 기반을 정립하였다.
이후 천문학은 그리스에서 크게 발전했다.
2. 기원전 3세기 천문학(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동설)
그리스의 천문학은 천문 현상에 대해 이성적이고 물리적인 답을 구하는 특징이 있었는데,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과학자인 아리스타르코스가 지구의 크기를 계산하였고, 달과 태양까지의 상대적 거리를 측정하였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는 지구가 자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3. 기원전 2세기 천문학(히파르쿠스의 별자리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히파르쿠스가 달의 크기와 거리를 계산하였으며, 천문기구 "어스트로랩"을 발명하였다. 이 히파르쿠스는 또한 1020개 별의 목록을 작성했으며, 이것이 유래가 되어 북반구 대부분의 별자리는 그가 발전시킨 그리스 천문학에서 유래하였다.
기원전 3세기의 아리스타르코스와 달리 기원전 2세기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주장하였고, 당시의 천문학을 집대성하여 알마게스트라는 책을 편찬하였다. 이 알마게스트는 모두 13권으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태양과 달의 운동, 1년의 길이, 지구에서 태양 및 달과의 거리 등과 일식, 월식 그리고 그가 주장한 천동설 등이 설명되어 있는 천문학적으로도 연구가치가 큰 책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 인간이 살아가는 지구 또한 우주의 중심이라는 당시의 종교적인 교리에도 일치하였으므로 이후 중세에 들어서도 알마게스트는 천문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인식되었다.
4. 중세시대(기원전 2세기~13세기)
기원전 2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정체되다시피 하여 더디게 발전하였으나 이슬람을 포함한 동양의 국가에서는 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슬람 최초의 천문대는 9세기 초에 세워졌고, 중국의 천문학자들은 가장 밝은 초신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슬람의 천문학자들은 항성을 발견하고 이름을 붙였다.
이 시기 천문학은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발전하였다. 짐바브웨와 팀북투의 유적들은 동시대에 아프리카에도 천문대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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